사무직이 무슨 봉입니까? [독산바지락 19]/1

사무직이 무슨 봉입니까?

아무 때나 일시키지 마세요. 아무 일이나 시키지 마세요.

아무 곳에나 보내지 마세요. 상식이라는 게 있습니다. 저희들도 사람이라구요 


번듯한 중견기업에 다니게 되어 처음에는 참 기뻤습니다. 저도 어디 가서 영업담당, 총무담당, 생산관리 명함 내밀고, 으쓱 할 줄 알았거든요. 그런데요 이곳은 ‘나의 삶’이라는 게 없더군요. 퇴근이 이렇게 눈치 보이고 어려운 일인 줄 몰랐습니다.


우린 정해진 퇴근시간 없습니까?

오늘은 갑자기 출장가야 했습니다. 3일 안에 2,000개 물량을 LG․삼성에 넘겨야하는데, 자재가 안 왔거든요. 여기저기 재촉하고, 날라주고, 포장하고 돌아오니 밤 11시더군요. 그나마 바로 퇴근도 못 했어요. 회사에 들러 내일 조립팀 작업조를 짜야 했거든요.

그제는 엑셀로 인건비 계산하느라 밤 10시까지 일했어요. 하루 이틀 일하다 그만 둔 사람 빼고, 연차휴가자 빼고, 일일이 연장근무 기록하고, 정직원, 파견직 따로 임금명세표 만들고… 무슨 일이, 해도 해도 끝이 없는지 모르겠어요. 그러다가 팀장님이 ‘다시’라는 말 한마디 하면…, 가슴이 철렁합니다.


연봉계약은 노예계약이 아닙니다

생산직 누나․언니들은 ‘잔업수당’이라는 게 있더군요. 그런데 우리는 야근을 해도 ‘수당’이 없어요. 포괄임금제래요. 야근수당 포함되어있다는 거죠. 도리어 야근수당 줬다고 야근을 당연시해요. 주40시간은 법조문에나 있지, 우리는 52시간제에요.

더 기가 막히는 건 ‘잔업수당’ 안줘도 된다는 사실을 악용해서, 우리를 생산업무 지원 가게 하는 거예요. 그러면 가서 온갖 허드렛일 다 하다 와요. 핀셋으로 불량 고치고, 포장해서 나르고, 심지어는 하청회사까지 지원 나가 알코올로 자재 ‘세척’까지 하다 와요.


우리가 왜 ‘욕받이’ 여야 합니까?

그래도 열심히 일하면 ‘승진’할 수 있다는 말에 참고 일해요. 그런데요, 정말 피눈물 날 때는요, 직원들 다 있는데서 욕먹는 거예요. “여기가 시간 때우는 곳이냐? 정신이 있는 거냐? 무슨 일을 이 따위로 하냐? 주인의식이 없다. 그러니 불량 나는 거다.” “너 같으면 이런 회사에 오더 주겠냐? 너 같은 ** 때문에 회사 망하는 거다.” 욕도 욕이지만, 남들 다 있는데서…

꼴랑 교통비 3만5천원 받고 주말에 일하고, 회삿 돈 아껴주려 ‘지원’나가고, 그렇게 일했는데 욕 듣는 날에는…

상식이라는 게 있습니다. 저희들도 사람이라구요.